School 101

고등학교가 전쟁터라 비유되는 이유

babosky 2022. 8. 2. 21:51

“아침이 안 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밤에 잠을 안 자요.”
A는 특유의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던하고 감정의 기복이 없어 보이고 주변에서 애들이 어떤 장난을 쳐도 혼자서 수학문제를 묵묵히 풀어나가는 A는 어느 월요일 갑자기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늘 묵묵히 자기 일을 알아서 잘 해오는 아이라 생각했던 어머니에게도 A의 그런 모습은 낯설었고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지 않느냐’는 A의 비난에 그동안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는 것 같아 그저 미안해할 뿐이다.
 
교차지원으로 컴퓨터 공학에 지원하겠다는 A의 고민은 이제는 공식적으로 사라진 문/이과 선택의 기로에서부터 시작된다. 미적분의 선택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사실상의 문/이과의 구분을 무시하고 상대적으로 수학에 약한 아이들이 많은 모집단에서 내신을 잘 만들어 수시로 승부를 보겠다던 A는 어느 주말 무심결에 찾아본 수도권 어느 대학의 입시전형계획을 본 뒤에 무너졌다. 그 대학은 입시전형계획을 발표하는 문서의 초입에 계열의 구분이 ‘없이’ 지원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는 유독 컴퓨터 공학 계열에는 미적분의 이수를 지원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사실 그런 학교는 많다. 컴퓨터과학 계열 뿐만 아니라 의약학계열에도 적용되고 수도권일수록 더 노골적이다.)
 
사실 그렇게 멘탈이 무너질 일은 아니다. 현재 A의 조건으로 지방 국립대로는 얼마든지 지원이 가능하고 성적도 합격선이다. 학교에서 미적분을 이수하지 않고 수능 선택과목으로만 준비해도 충분히 원서를 낼 곳은 많다. 하지만 A의 마음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 내심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 최초의 충격 이후 며칠 간 전혀 시험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게 마음에 걸렸을 수도 있다. 어느 순간 A는 미적분 이수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고 교차지원을 목표로 인문계열을 선택한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생각했고, 결국은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에 몰입했다. 이런 생각의 고리를 이어가는 동안 A는 마치 눈가리개를 하고 있는 경주마와 같았다. 눈앞에 갑자기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 등장해 버린.
 
학교에선 최대한 A의 상황을 고려해주기로 했다. 이과 반으로 옮겨줄 수도 있고 미적분을 이수할 수 있게 소인수과목으로 편성을 해 줄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이든 A가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자퇴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말이 오가는 상황에서 학교는 더 이상 원칙만을 내세울 수는 없었다. 입시라는 게 억지로 시간을 되돌려야 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 혀끝까지 차오르지만 나는 지금 A만큼 고통스럽고 절실한 마음이 아니다. 그녀에게 이 일은 인생을 건 일이고 어쩌면 지금 이 상황은 A가 인생에서 처음 겪어보는 힘든 고난이다. 

두 달간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어떻게든 학교에 오고 나면 하루는 그냥 지나갔다. A는 늘 밤을 새는 것 같았고 수업에 집중하다가도 이내 죽은 듯이 잠들곤 했다. 방과 후엔 남아서 자율 학습을 했고, 학원 갈 시간에 맞춰 학교를 나서곤 했다. 하지만 유독 주말이 되면 A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잠을 제대로 자지도 않았다고 했다. 가족들은 A가 혼자 방 안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확인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다 월요일 아침이 되면 일어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기말고사를 일주일 앞두고 A는 결국 자퇴서에 서명을 했다.
 
나는 A의 선택을 이해하고 싶다. 어떤 변수들이 그런 결정으로 이어졌는지 이해하고 싶다. 숙려 기간 내내 나는 상담 선생님에게 A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물었고, A의 완벽주의적인 정서적, 심리적 성향에 대해 조금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걸로 2학년 초입까지 학업에 너무나 충실했던 아이가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내린 배경이라고 하기엔 뭔가가 부족했다. 나는 매일 아이들을 본다. 아이들이 학교를 종종 '지옥'으로 묘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 수는 5년여 만에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2017년 입학생은 306명이었다. 한 학년에 1등급이 12명은 나왔다. 2021년 입학생은 183명이다.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인원은 7명으로 줄었다. 과정중심 수업과 평가가 도입되면서 아이들이 할 일은 많아졌다. 각종 모둠활동과 작성해야 하는 활동지와 읽어야 할 책들, 써야 할 보고서들은 눈깜짝할 사이에 쌓여가고 수행평가 시즌엔 거의 모든 과목에서 발표와 글쓰기를 진행된다. 이때가 되면 아픈 아이들이 많아진다. 보건실은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프고 숨쉬기 힘들어하는 아이들로 북적인다. 그 모든 과제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제대로 해내려다 대상포진을 앓는 아이도 있다. 교과수업 말고도 해야 할 일은 많다. 학생부에 담을 수 있을 만한 활동을 찾아 참여해야 하고 모든 활동에는 보고서가 뒤따라 온다. 학생부의 문장 몇 줄은 그렇게 힘들게 공들인 시간과 노력, 혹은 피와 땀과 눈물로 쓰여진다. 이렇게 공들여 쌓은 시간을 그렇게 포기하겠다는 결정은 어떤 결연한 의지가 아니면 힘든 일이다. A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고 만다. 어차피 나는 했던 말을 반복하게 될 거고 그 말은 다시 튕겨져 나올 것이다.

언젠가 고등학교에서 미적분을 이수하지 않은 아이들이 상경계열로 진학한 적이 있다. 대학들은 그런 아이들에게 미적분을 직접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미적분은 다시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필수과목이 되었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변화에 대학의 입시가 동조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명목상으로는 문이과 통합을 내세운 교육과정이지만 대학들에게 이런 변화는 의미가 없다. 그들은 입시 전형에 조건을 내걸어 당당히 특정 트랙을 밟아 오기를 요구할 수 있다. A의 자퇴는 내게 그 벽을 다시금 실감하게 한다. 그런 선택을 내리기까지 영향을 주었을 수없이 많은 변수들 중에 이런 환경적인 요소가 근본적인 작용을 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가 단 한번도 중요하지 않았을 대학과, 입시라는 그들의 무기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이런 맥락 속에서 오히려 A의 선택은 정당화되기도 할 것이다. 아직도 대학들은 문/이과 구분이 없어진 통합적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 같지 않다. 
 
고교학점제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과목 선택의 자율성'이다. 자율성이란 그 무엇에도 예속되지 않아야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했듯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통째로 입시라는 제단에 놓여 있다. 10대 후반 청소년들의 수면과 자아 탐구의 자유와 배움의 즐거움과 행복은 대학에 완전히 예속된 상태나 마찬가지다. 입시 앞에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과연 자율성을 가진다는 게 가능이나 한 걸까? 지금처럼 학교 생활의 일거수 일투족이 몇 자의 문구로 기록되고 이것이 입시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부담을 고스란이 떠안게 되는 환경이 아이들에게 ‘지옥’으로 비춰지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우린 그들의 ‘빅브라더’인 셈이다.
 
A가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졌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성향만으로는 자퇴라는 결정을 설명할 수 없다. 입시에 완벽하게 예속된 고등학교 교육과정이라는 환경적 변수가 그 아이의 완벽하고 싶은 심적 강박을 재촉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고교학점제는 극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이다. 입시로부터의 자유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