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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ool 101

IB는 직무유기다

글머리(Disclaimer) : 미리 알아두면 좋을 이야기
- 이 글을 쓰는 이는 현재 일반고에 재직중인 20년차 중등 교사이고 지난 2021년 고등학교 신입생을 담당해 가르치다 2022년부터는 이들의 담임을 맡아 고3인 현재까지 가르치고 있다. 즉, 교직 생활 20년만에 한 학년의 학생들을 입학부터 졸업까지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 무엇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알 수 있는가?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그들의 과제물 특히 아이들이 쓰기와 말하기 수행평가를 준비하면서 작성하고 제출했던 기록들을 보여주고 싶다. 요즘 웬만한 과목에선 모두 학생들에게 논리적인 글쓰기와 특정 주제에 대한 구술 발표를 요구한다. 글쓰기나 발표를 어렵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참고할 수 있는 예시를 제시하고 개요쓰기부터 살을 붙이는 과정까지 최대한 많은 연습을 시키려 노력한다. 2년 전 쓰기와 말하기 과제에 대해서 안내할 때 얼굴을 가린 마스크 위에서 흔들리던 그들의 동공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들의 당황은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쓰기와 말하기 평가를 치르는 그 시즌동안, 그리고 그 후에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나는 적잖이 측은지심을 느낀다. 솔직히 말하면 2년 전 이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잘 정리된 말과 글로 표현하기는 커녕 무언가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 그 자체가 너무 힘든 아이들이었다 (한참 뭔가를 많이 배우는 중학교 2, 3학년 시절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던 것이 원인이라고들 하지만 확인할 바는 없다). 그들이 선정한 주제와 작성한 글의 개요를 확인하고, 그들이 단어들과 생각들을 어떤 방식으로 이어나가고 조직해 나갔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솔직히 나의 멘탈이 안드로메다로 가 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 모를 수 있지?' 또는 '어떻게 이렇게 두서가 없을 수 있을까?' 라는 당혹감은 그러나 다행히 어느 순간 어떤 대견한 놀라움으로 바뀐다. 매학기 글쓰기와 발표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금씩 달라졌다. 서로의 발표를 지켜보면서 어떻게 내용을 구성하고 어떻게 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지 배우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사회성은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학습에서 사회성이 빠질 수 없는 요소라는 점을 확인하곤 한다), 그들의 주제 선정과 내용 구성은 제법 논리적인 틀을 잡아가고 있었으며 이제는 곧잘 능숙하게 눈을 반짝이면서 발표와 글쓰기를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아이들은 정말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다. 그냥 시험치기 위해서 외우는 수업만 했다면 보기 힘들었을 변화다 (여전히 수능 준비를 위한 공부는 기계적인 암기 위주의 공부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지만..)
 

서론: 현존하는 공교육 체제 내 IB과정 (고교에 한해서) 

잠깐의 휴직 후 복직했을 때 난데없이 IB 라는 것 때문에 온동네가 난리였고,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IB 디플로마 프로그램 중 English B 과정의 교사 연수를 이수한 바 있다 (연수 비용은 교육청 예산으로 지불되었고 이수증은 IB 본부에서 발급되었다).
- 직접 문서로 확인한 바는 없지만 내가 이해하고 있는 바로는 IB교육과정은 스위스에 있는 IB본부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그 시스템 자체를 전수받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IB 학교를 운영하기 위한 교사 연수나 자격 취득, IB학교 인증을 받는 과정 및 IB학교 인증 유지, 학생들의 성적을 결정하는 평가 과정(내부 평가 및 외부 평가)에 비용이 소요되고 이는 교육청 예산으로 집행된다. 다만 학생이 IB에서 최종 부여한 성적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에는 그 비용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한다.
- IB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들의 입학설명회 자료를 보면 IB과정의 평가는 내부평가외부평가로 이루어져 있는데 내부평가는 IB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의 교사들이 수행하고 이를 다시 IB에서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 확정한다고 한다.  IB 내부 평가는 학기별로 이루어지고 외부평가는 3학년 2학기 중에 치뤄진다고 한다. IB교육과정을 완료했다는 조건을 갖추기 위해선 내부 평가와 외부 평가를 모두 거쳐야 하며 외부평가가 최종적인 디플로마 획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80프로 정도로 훨씬 더 높다. 
- IB 교육과정을 직접 운영해 본 적은 없지만, 마침 대학 동기 2명이 IB 학급을 운영하는 학교에 재직중이고 그 중 한 명은 심지어 IB 코디네이터인데다 두 명 다 근무하는 곳에서 관련 업무 담당자라 만날 때마다 나는 이 교육 과정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해결하곤 한다. 내 동기들 포함 직접 IB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분들을 제외하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저 조각들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밖에 알지 못하는 내가 어쩌면 우리나라 교육과정 안에서 운영되는 IB 과정에 그나마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가깝지 않을까 한다 (적어도 일반 대중보다는 그러리라 믿는다). 
- 현재 우리나라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IB교육과정을 녹여내어 운영하는 고등학교 중에는 일반고, 외고, 국제고, 일반고이긴 하지만 ‘선지원‘이라는 제도로 신입생을 선발하며 그들의 중학교 내신이 상위 30~40% 정도 되는 거의 특목고 같은 일반고가 있다. 이들 학교 중 국제고를 제외하고는 학생 전체가 IB 교육과정 대상이 아니라 학년별로 2학급만을 대상으로 운영한다. 즉, 입학 당시에 일반 과정과 IB과정을 따로 선발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몸통1 : IB과정의 특징

IB의 학습자 프로파일(좌)과 디플로마 프로그램의 구조(우)

- 연수를 통한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인지한 IB 과정의 특징은 이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가치와 그에 따라 학생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지 명확하게 서술하고 그것을 수업과 평가에 이르기까지 교육과정 내내 일관되게 가져가려는 노력이 시종일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위 그림은 IB의 학습자 프로파일과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디플로마 프로그램의 구조로 우리나라 교육기본법에서 정의하는 '인격을 도야'하고 ,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의 '홍익인간'의 구체적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수를 위해 받았던 교재와 매뉴얼들을 보며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학습자 프로파일에서 정의한 학습자의 역량과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단순한 문구 이상의 실체적인 의미를 지니며 그것을 교육과정 전반에 녹여내려는 명시적이고도 암묵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우리의 학생이 어떻게 성장하기 원하며, 그걸 위해서는 어떤 특정 방식의 수업을 할 것이고, 어떤 특정 방식의 평가를 할 것이다'가 시종일관 모호하지 않고 명료했으며 반복적으로 되풀이되어 강조되었다. 
- 우리의 교육과정에는 그럼 그러한 '이상향'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모든 교육과정에 총론이 있고 각 교과별 각론이 있으며 거기 적힌 내용들은 IB연수 매뉴얼에 명시된 학습자상과 교육의 목표와 내용상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는 다만 그 어떤 좋은 이상과 가치도 무력화시키는 입시라는 공고한 체제가 있고, 그에 굴복해 지난 수십년을 살았던 만큼, 여전히 습관적으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그에 굴복할 뿐이다. 습관적으로 사고하는 것에는 힘이 들지 않는다. 그것에 반하거나 이겨내려고 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대부분 포기하게 되는 것일 뿐 (생각에 관한 생각, 대니얼 카너먼).

- 다음은 학교알리미를 통해 IB학급을 운영하는 일반고의 교육과정을 살펴보고 일반과정과 IB과정이 이수하는 과목을 표로 정리한 결과이다. (간략하게 표현하기 위해 다소 생략한 부분이 있으므로 정확한 내용은 학교알리미에서 학교교육과정 편제표를 참고하기 바란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일반과정 학생이나 IB과정 학생이나 모두 공통과목을 이수하므로 차이가 없다.) 

일반과정 2학년IB과정 2학년일반과정 3학년IB과정 3학년 
(지정) 문학
(지정) 독서 

(지정) IB 언어와 문학  HL1
(지정) IB 언어와 문학 HL2
(택1) 화법과 작문/언어와 매체
(택1) 현대문학 감상/고전문학 감상
(지정) IB 언어와 문학  HL3
(지정) IB 언어와 문학 HL4
(지정) 수학1
(지정) 수학2
(지정) 확률과통계
 (학기별 택1) 경제수학/기하/실용수학/수학과제탐구/심화수학2 
(지정) 영어1
(지정) 영어독해와 작문
 (지정) 영어2
(지정) 진로영어 
 
(택1) 미적분/고전읽기/영어권문화 (학기별 택2) 심화수학1/심화국어/심화영어1 
  (지정) 한국사(지정) 한국사
(학기별 택3) 윤리와 사회/정치와 법/세계지리/동아시아사/물1/화1/생1/지1/IB역사SL1/IB물리SL1/IB생명과학SL1/B역사SL2/IB물리SL2/IB생명과학SL2(1학기 택3) IB영어 SL1 / IB 수학분석과 접근 SL1 / IB 역사 SL1 / IB생명과학SL1/IB 물리 SL1 / IB영어 연극이론과 창작 Sl1 
(2학기 택3)  IB영어 SL2 / IB 수학분석과 접근 Sl2 / IB 역사 SL2 / IB생명과학SL2/IB 물리 SL2 / IB영어 연극이론과 창작 Sl2 
(학기별 택2) 세계사/한국지리/사회문화/생활과윤리/물2/화2/생2/지2(1학기 택3)  IB영어 SL3 / IB 수학분석과 접근 SL3 / IB 역사 SL3 / IB생명과학SL3 / IB 물리 SL3 / IB영어 연극이론과 창작 SL3 
(2학기 택3)  IB영어 SL4 / IB 수학분석과 접근 SL4 / IB 역사 SL4 / IB생명과학 SL4 / IB 물리 SL4 / IB영어 연극이론과 창작 SL4
(학기별 택1) 비교문화/사회탐구방법/세계문화와 미래사회/생태와 환경/생활과 과학 (학기별 택1) IB지식이론1(학기별 택1) 사회과제 연구/비교문화/과학과제 연구/과학사 
(학기별 택1) 음악감상과 비평/미술 감상과 비평 (학기별 택1) 음악감상과 비평/미술 감상과 비평 (학기별 택1) 음악연주/미술창작(학기별 택1) 음악연주/미술창작
(지정) 운동과 건강(지정) 운동과 건강(지정) 운동과 건강(지정) 운동과 건강
(학기별 택1) 정보/한문1/IB지식이론1(지정) IB지식이론2
(학기별 택1) 논술/창의융합과제연구
(학기별 택1) 논술/창의융합과제연구(지정) IB지식이론3
(학기별 택1) 논술/창의융합과제연구
 (1학기 택2) IB 영어 HL1 / IB 수학 분석과 접근 HL1 / IB 역사 HL1 / IB 생명과학 HL1 / IB 화학 HL1
(2학기 택2) IB 영어 HL2 / IB 수학 분석과 접근 HL2 / IB 역사 HL2 / IB 생명과학 HL2 / IB 화학 HL2
 (1학기 택2) IB 영어 HL3 / IB 수학 분석과 접근 HL3 / IB 역사 HL3 / IB 생명과학 HL3 / IB 화학 HL3
(2학기 택2) IB 영어 HL4 / IB 수학 분석과 접근 HL4 / IB 역사 HL4 / IB 생명과학 HL4 / IB 화학 HL4
* 굵은 글씨로 표기된 과목은 내신석차 9등급 상대평가 
** 이탤릭체로 표기된 과목은 A/B/C 절대평가 
*** 노란색은 사회계열, 오렌지색은 과학계열, 하늘색은 IB 과목이다. 보다시피 IB 과목은 모두 진로 또는 전문과목으로 A/B/C 절대 평가가 이루어진다. 
**** IB 디플로마 과정을 이수하는 학생들은 6개 영역(언어습득, 언어와 문학, 개인과 사회, 수학, 예술, 과학)에서 각 1과목씩을 이수해야 하고 이중 3~4개의 HL과목을 반드시 이수해야 하며 나머지는 SL과목으로 이수할 수 있다.
***** HL은 Higher Level 즉, 심화 수준 SL은 Standard Level 즉, 보통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 일반과정과 IB과정의 교육과정편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으로는 우선 모든 IB과목의 평가가 A/B/C 3단계 절대평가로 이루어진다는 점일 것이다. 이런 과목의 경우 대학별 수시전형에서 1/2/3 또는 1/2/4 또는 1/3/5 등급 등으로 인정되므로 아무리 못해도 수시전형에서 3~4등급 정도의 성적을 가져갈 수 있고 5등급 아래로 계산될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이들은 수시 전형에 활용되는 내신성적의 평균을 구했을 때 일반 과정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고 해석된다. 2학년 상당수 과목과 3학년 일부 과목이 내신석차 9등급으로 평가되는 일반과정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좋은 내신 등급을 얻기 힘들 확률이 높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다만, 실제 근무자의 말을 빌자면 IB과정의 학생들이 1학년 때 이수한 공통과목의 성적 분포는 여느 일반고 학생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한다.)
 
- 이와 같은 차이는 그런데 본격적으로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없어지게 된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일반고 교육과정의 학생들이 2, 3학년부터 이수하는 과목들도 A/B/C 3단계 절대평가로 성적이 산출되고 (현재로선 그럴 계획이고), 그렇게 된다면 지금처럼 수시전형에서의 등급 계산시에 IB과정 학생들에 비해 굳이 불리한 위치에 서지 않아도 될 것이라 예상된다. 물론 교육과정과 과목의 성격에 따른 교과세특 내용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이 부분은 IB교과목과 일반과정 교과목의 평가계획이나 교과진도운영계획 등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학교알리미에서 얻을 수 있는 이 학교의 각 과목별 평가계획과 교과진도운영계획을 보았을 때 알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 첫째, IB과정은 따로 IB본부에서 인증한 교과서를 사용한다. 검색해 본 결과 모든 교과서가 영어로 쓰여져 있다. IB과정 안내 자료에 따르면 실제 수업은 영어 과목과 영어 연극(드라마) 수업만 영어로 진행하고 나머지 과목은 한국어로 진행한다. 
- 둘째, IB과정의 일부 과목은 100% 과정평가 및 수행평가로 이루어지며 이중 상당부분이 논/구술형 평가, 포트폴리오, 또는 프로젝트형 과제 수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 셋째, 일반 과정 학생들보다 IB과정 학생들의 교과목 평가에서 논/구술 중심의 수행평가 비중이 높다. 일반 과정의 경우 대략 지필 60%, 수행 40%의 비중으로 평가가 이루어지고 IB과정의 경우 반대로 지필 40%, 수행 60%인 경우가 많았다.
- 넷째, 대부분의 일반과정 과목이 2번의 지필고사를 치르는 반면, IB과목 중에는 지필 고사가 1번 뿐인 과목도 제법 있다. IB과정의 지필평가 문제 유형이 수능 문제 유형과 유사한지는 학교알리미에 있는 정보로는 확인할 수가 없다. 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
- 다섯째, 일반과정이나 IB과정 모두 지필과 수행 모두를 아울러 논/구술형 평가가 전체 평가에서 4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 여섯째, 일반과정 학생들과 IB과정 학생들의 수행평가 과제명으로 미루어보건대, 과제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크게 차이가 나는 경우는 없었다. 이를 테면 문학 과목 수행평가 중 '소설 연계 에세이쓰기'에서 소설 감상 후 제시된 기준에 따라 작품을 분석하는 논/구술형 과제가 있고 IB 언어와 문학 HL1과목의 수행평가 중 '제시된 방향에 따른 텍스트 분석'에서는 처음 접하는 비문학 지문을 보고 제시된 방향에 맞게 지문을 분석하는 글을 쓰는 논/구술형 과제가 있다. 다만 수행평가 비중이 높은 IB과목의 특성에 따라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직접 수행해야 하는 활동이나 과제의 양은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 일곱번째, 교과 내용의 구성에는 차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이를 테면 IB과정 영어에는 일반과정 영어 과목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문학 작품이 심도 깊게 다루어진다. 이는 학생들이 영문학 작품을 읽고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인 글로 표현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다만, 동기의 말을 빌자면, IB과정의 한 학생이 포털 검색을 통해 에세이 주제를 찾아보다 단 한번도 읽어본 적 없는 찰스 디킨스의 문학 작품을 분석하는 글을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에세이로 써 오겠노라고 하기에 우선 그의 작품을 먼저 읽어보기를 권했다고 한다.) 
 
- 또 한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바로 수능이다. IB과정 학생들은 근본적으로 수능 대비가 힘들다. 우선은 일반고 교육과정에 존재하는 소위 수능의 출제범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학교지정으로 반드시 이수하게 되는 과목들이 IB과정에는 없다. 즉, 교육과정 자체에 수능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또한 IB과정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 소화해야 할 과제의 양을 생각해 볼 때, 일반 과정 학생들처럼 일정 시간을 쪼개 수능 문제풀이에 대비하는 수업을 하기는 불가능에 가깝고 이는 IB협회가 인증하는 라이센스 기준에 따른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IB과정 학부모도 있고, 오히려 그게 좋아서 이 과정을 선택한 학부모도 있기 때문에 학부모들 사이에 가끔 의견 충돌이 있다고 한다. 
 
- 그런데 이건 또 거꾸로 얘기하면, 일반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학생들에게서 내신상대평가와 수능이라는 것을 걷어내면 IB과정과 같은 수업과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미 일반 과정도 과목별 평가 항목의 40~50% 정도의 비중을 논/구술 중심의 과정형 수행평가로 구성하고 있고 (이것은 몇년 전부터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과목별 평가계획 수립시에 반드시 반영해야 할 사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내가 목격한 학생들의 성장도 그 과정을 성실히 수행하는 동안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여전히 수업 시간의 일정 비율을 할애하여 수능에 대비한 문제 풀이를 연습시켜야 하고 평가 역시 어느 정도는 그런 식의 문제 풀이 형식을 답습할 수밖에 없다. 두 가지를 다 하려다 보면 결국 두 가지 모두에 100% 헌신까지는 할 수 없게 마련이다.
 

몸통2 : 그럼 입시는?

그렇다. 그렇다면 IB과정 학생들의 입시는 어떻게 되는 걸까? 수능에 취약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IB 과정을 이수하는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수능최저 기준이 약하거나 아예 최저 기준이 없는 학생부 종합전형이나 논술 전형으로 국내 입시를 치를 수 있고 실제로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기대하는 것도 이 부분, 즉 학생부 기록의 차별성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학생이 경비를 부담하는 형식으로 IB과정을 운영해 오던 일부 외고, 자사고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국내 유수의 대학에 꾸준히 입학생을 배출한 바가 있다. 수도권 학생부 종합전형이나 논술 전형의 경우 수능 최저가 없는 경우가 상당수 있고, IB과정의 수업 과정을 담은 학생부는 논/구술형 수행평가를 치러내면서 동시에 시간을 쪼개 수능을 위한 공부를 병행했던 일반고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의 학생부와 구분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일단 과목명부터가 다르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IB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좋은 내신 등급을 받을 가능성도 높고 (2~3학년 때 이수하는 과목이 절대평가 과목이며, 이들의 최저 성취도 C는 1~9등급 중 5등급이 하한이므로), 서류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도 높다“.

- 최근 지역 국립의과대학에서 모집 인원은 적지만 수능 최저가 없는, 경우에 따라 내신 성적도 반영하지 않는, 학생부종합전형을 새로 만든 것을 보고 혹자는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하는 공교육 시스템 내의 IB과정 학생들을 타겟으로 한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한다. 만약 올해 입시에서 일반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신 등급은 낮은 IB과정의 졸업예정자가 수능 최저가 없고 내신 성적을 반영하지 않는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소위 의/치/약/한/수 학과에 입학생을 배출하거나, 그것도 만약 수도권 대학에 입학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 소문은 인과성을 갖춘 현실이 될 것이고 교육감은 스스로 좋은 결실을 얻었노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IB과정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이제 그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교육감은 교육청 차원에서 IB과정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올해 들어 수도권과 지역 국립 대학의 입학사정관 및 언론기관을 IB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로 초청해 IB과정의 수업을 보여주기도 하고, 모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석달 정도 학교를 방문하며 프로그램을 제작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IB과정에 대해 긍정적인 내용을 담은 기사들이 요즘 자주 보인다. 심지어 교육부 장관조차도 "IB는 암기, 시험 위주의 교육을 탈피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라 했다고 한다. 
 
- 이 지점이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이다. "암기, 시험 위주의 교육"의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현재의 입시 제도는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 두면서 어떻게 다른 이의 손을 빌어 이를 탈피하는 대안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입시에 완전히 예속되어 있는 고등학교 교육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국가의 예산으로 다른 나라의 사설 기관에 로열티를 지불하여 운영되는 교육과정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일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한 나라의 공교육과 관련한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몇 개의 학교를 고르고 그 중 또 몇 개의 학급을 지정해서 나랏돈으로 다른 나라의 컨설팅 회사에 맡기고 일부 학생들에게 특정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동시에 다른 대다수의 학생들과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을 수십년째 바뀐 게 없는 입시의 틀 속에 그대로 방치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다.

마무리 :  IB는 직무유기다
- IB과정 그 자체의 가치에 대해서 나는 전혀 폄하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그 교육적 가치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것은 사실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닌, 교육이 추구해야 할 원래의 목표이며 궁극적인 가치라고 본다. 따라서 한 나라 혹은 한 도시의 교육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 나라의 교육체제 자체가 가진 교육하는 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소수의 학생들을 위한 특별한 교육과정을 무료로 운영하는 듯이 홍보하면서 그 과정을 이수하는 학생들에게 어쩌면 입시 경쟁을 우회하는 길을 터 주는 양상으로 흘러가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고등학교는 더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한 무한 경쟁이 일어나는 ‘지옥’으로 비유된다. 모두의 ‘지옥’을 방치해 두고 소수에게만 적용되는 ‘대안’을 이야기하는 것은 교육과 관련한 정책 결정권자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대안’으로 비유된 교육의 모습은 본래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고 교육기본법 2조가 말하고 있다.
- 물론 어떤 희망 회로를 돌려서 이런 시도가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지고 올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고등학교에서 수능 준비는 전혀 하지 않고 논/구술 활동 중심의 수업을 하고 논/구술 중심의 절대평가를 거친 학생들이 대학에서 좋은 성과를 보이고 그에 따라 수능 성적이나 상대평가에 의한 내신 등급이 아니라 학생의 학교 생활을 기록한 내용만으로 더 많은 학생을 선발하려고 하는 추세가 행여나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다 어쩌면 혹시나 고등학교 내신 상대평가나 수능이라는 것이 무력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결과는 어떤 소수를 위해 IB교육과정을 운영했기 때문이 아니라 본래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이 그런 시스템이기 때문이라는 인과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은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감이나 교육부 장관이라면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고 대학들과 협력하는 노력을 기울이며 지금의 말도 안되는 입시 제도를 바꾸는 작업에 공적인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맞지 않은지, 그런 점에서 다시 한번 지금 그들은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있는 것인지 묻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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